E는 5년이 넘게 집에 가까운 정신과에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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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ajfieo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07-31 18:10본문
내구제
E는 5년이 넘게 집에 가까운 정신과에 다녔다. 이사를 하면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해서, 노스웨스트 호의 퀴어프렌들리 병원 목록을 뒤지기 바빴다. 우울증, 공황장애, 범불안장애 등 시기마다 다른 질병을 진단받았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극에 달할 때면 몇 주간 약을 처방받아 먹기도 했다. E는 기다렸다. 가족들만이라도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다면, 보듬어줄 수 있다면 한국에 머무르고 싶었다. 하지만 기다림은 끝없이 계속되었고 E의 몸과 마음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신호를 준 것은 허리였다.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길었던 E는 각별히 건강에 신경썼지만 야속하게도 관절이 견뎌주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불량한 자세가 아닌 근육의 과한 긴장, 스트레스'를 이유로 꼽았다. 마사지를 해주던 물리치료사가 말했다. '친구들과 모여 수다도 떨고 실없는 얘기도 하고 그래요. 너무 일만 하지 마시고요.' 계속되는 기다림 속에 결국 목에는 두 군데, 허리에는 세 군데 디스크가 모두 파열되었고 E는 보존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족과의 끝없는 마찰이었다. 친언니와 이 문제로 다툼이라도 하면 몇 주 동안 제기능을 할 수 없었다. 기다림의 거의 끝자락에 왔을 때 E는 너무 어지러워 제대로 걸을 수 없었고, 사람이 많은 곳에 나가기라도 하면 천장이 무너지거나 바닥이 울렁거리는 환시를 보기 시작했다. 대학병원에서 뇌 MRI를 찍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E는 무서웠다. 정신과에 가서 엉엉 울며 하소연을 했더니 E를 몇 달간 봐오던 할아버지 의사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언니와 연락을 꼭 해야 하나요?'첫 번째 웨딩은 E의 웨딩이었다.그래서 그녀는 모든 걸 버리고 떠났다. 결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아니, 그보단 주변에서 동성 커플에 큰 관심이 없는, 그냥 평범하게 이들이 존재하는 나라를 골랐다. 렌트할 집을 구하는 동안에도 둘은 관계를 숨길 필요가 없었다. 한국에선 만년 친구였다면 이곳에서는 엄연한 커플이었다. 밴쿠버에 도착한지 3개월 만에 둘은 결혼했다.office weddingThe officiant has arrived. She's warming up the crowd.몇 달 전 동생이 연락이 왔다. 평소 인권 활동을 많이 하던 성소수자 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을 하다가 그냥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왜 우리는 죽어야 하는가.점심 식사가 마무리된 후에는 곧장 E의 집으로 돌아와 서너시간 휴식을 취했다. 침대에 널부러져 잠을 자기도 하고, 오손도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금방 저녁 시간이 되었고 짐을 챙겨 F의 가족들이 사는 화이트락으로 향했다. 밴쿠버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져있는 이 도시는 은퇴한 후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택시에서 내리자 집의 진입로에는 벌써 대여섯 이상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F는 2년 만에 가족들을 다시 보는 거라, U와 E, E의 아내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거라 다들 들뜨고 상기된 얼굴로 집에 들어섰다.외국에 나와서 산지 1년이 지났지만 내재화된 수치심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는지 나는 아직도 나를 '첫 번째 웨딩의 E'라고 밝히기가 꺼려진다. 하지만 용기를 낼 때가 된 것 같다. 아직도 한국에는 많은 동성애자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박탈당한 채로 살고 있고, 가끔은 힘에 부쳐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만약 지금의 삶이 너무 힘들다면, 지금과 다르게 사는 방법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우리는 죽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잘 살아도 된다.*태초의 인간이 모두 헐벗은 상태로 지내다 수치심이란 것을 느껴 옷을 입기 시작한 것처럼, 아마도 E의 가면은 그때 만들어진 것 같다. 무리로부터 배척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본인의 내면이 무언가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수치심은 세월이 갈수록 그녀의 가면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남자친구들과의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두 명의 남자친구는 모두 잠자리를 원했고, E는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양한 스킨십을 시도했지만 E는 결국 이별을 통보했다.E는 본인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중학교 1학년 때즈음 알았다. 남돌보단 여돌에게 관심이 가고, 여자중학교를 다녔는데 같은 반 친구였던 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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