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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의 영웅 전봉준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25] 암울한 시대에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강퍅한 삶을 살아야 했던 전봉준 ▲ 녹두장군 전봉준 동상. 전봉준은 신문과 기록(전봉준 공초)이 마무리되자, 권설재판소에서 을미년(1895) 3월 29일에 사형선고를 받고, 다음 날인 3월 30일(양4.24) 좌감옥에서 새벽 2시에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전봉준과 손화중·김덕명·최경선·성두한은 판결이 나오자마자 곧바로 처형되었다. 이들이 최후의 순간을 맞은 법무아문 감옥서(옛 의금부 전옥서) 터인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 앞엔 2018년 4월 24일 전봉준의 마지막 사진에 담긴 모습의 동상이 들어섰다. 이 사진은 필자가 동상제막식 전후에 여러장의 사진을 촬영했는데 그 중 하나이다.ⓒ 동학혁명기념관장 이윤영만일 조선사에서 반역아를 모조리 베어버린다면 발랄한 기백이 그만큼 사라질 것이요, 따라서 뼈 없는 기록이 되고 말 것이다. - 호암 문일평, 〈역사상의 기인〉함석헌의 표현대로 "상투 밑에 고린내 나는" 조선왕조 500년 말기에 그나마 전봉준과 김개남 등이 있어서 '뼈 없는 기록'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이들은 조선 말기 척박한 이 땅에서 토우인(土偶人)과 같은 존재로 태어나서 무너져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렸으나 그 바퀴에 깔린 불우한 혁명가이다. 무릇 대부분의 혁명가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리지만 자신의 핏자국으로 거기에 새로운 길을 내는 사람들이다.이들도 그랬다. 어느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다. 압제와 수탈로 얼룩진 '전통'을 깨부수고 분연히 일어선, 비범한 범인(凡人)이었다. 그들이 태어난 골짜기와 지평선을 한 번도 넘어본 적이 없는 무명의 농민들을 이끌고 처음에는 관군과, 나중에는 현대식 병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반봉건'과 '척왜척양'의 기치는 그 시대 상황에서 의혈장부라면 마땅히 들어야 할 시대적 요구였다. 그것을 '잘난' 양반들이 모두 몸을 사릴 때 그들이 일어섰다. 반봉건이 이들의 첫 주장이라면 척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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