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계엄 사태 이후 일기 토대 ‘무사를 바라는 모두의 분노’로 2021년 첫 에세이 이어 두번째소설가 황정은의 에세이 ‘작은 일기’는 윤석열 계엄 사태 이후 다섯달의 기록을 담았다. 이후 창작에 전념할 수 없었던 황 작가는 “윤석열이라는 이름으로 일기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매일 부르고 싶다”고 3월10일치에 썼다. 창비 제공 국회 정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속에 섞여 “윤석열을, 반란수괴, 내란수괴”를 “체포하라”고 몇시간 외치다가 목이 쉬었다. 그 자리에서 줄곧 “반란수괴”로 선창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 “내란수괴”까지는 (이제) 낯익어도 “반란수괴”라는 말이 낯설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군법으로 더 엄하게 죄를 묻는 말인 것 같았다. 그가 구호를 단념하지 않아 김보리와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2024.12.6. 금) 체포에 응하지 않고 관저에 틀어박힌 윤석열 때문에 한강진에 사람들이 모였다. 퇴근하는 김보리를 공덕에서 만나 한강진역으로 이동했다. (…) 집회 자리를 찾아가다가 …극우 집회를 관통했다. …혼비백산해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 이걸 봐서 다행이라고 김보리는 몇번이나 말했다. 직접 보지 못했다면 다 노인들이라고 생각했을 거라면서. (2025.1.3. 금) 이날은 동생들이 나눠 준 ‘윤석열 탄핵봉’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나갔지만 꺼내지는 않았다. 그 이름이 내 손에서 앙증맞게 반짝이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 내 옆에 앉은 젊은 여성도 혼자 온 것 같았다. (…) 남태령 이후로도 이런 사건을 목격했다는 것은 이 나라 구성원으로서 내가 누리는 복일까. (2025.1.4. 토) 그랬다, 이 필자는. 계엄 사태가 발발한 2024년 12월3일 밤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간 뒤부터 광화문으로 갔고, 한남동 관저로 갔고, 경복궁으로 또 갔다. 집이 파주다. 애면글면 바라던 윤석열 탄핵안이 국회 통과되니 윤석열 체포를 막아선 자들이 나오고, 겨우 윤석열을 체포하니 윤석열을 석방시킨 자가 나오며, 그러거나 말거윤석열 계엄 사태 이후 일기 토대 ‘무사를 바라는 모두의 분노’로 2021년 첫 에세이 이어 두번째소설가 황정은의 에세이 ‘작은 일기’는 윤석열 계엄 사태 이후 다섯달의 기록을 담았다. 이후 창작에 전념할 수 없었던 황 작가는 “윤석열이라는 이름으로 일기를 시작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매일 부르고 싶다”고 3월10일치에 썼다. 창비 제공 국회 정문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속에 섞여 “윤석열을, 반란수괴, 내란수괴”를 “체포하라”고 몇시간 외치다가 목이 쉬었다. 그 자리에서 줄곧 “반란수괴”로 선창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 “내란수괴”까지는 (이제) 낯익어도 “반란수괴”라는 말이 낯설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군법으로 더 엄하게 죄를 묻는 말인 것 같았다. 그가 구호를 단념하지 않아 김보리와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2024.12.6. 금) 체포에 응하지 않고 관저에 틀어박힌 윤석열 때문에 한강진에 사람들이 모였다. 퇴근하는 김보리를 공덕에서 만나 한강진역으로 이동했다. (…) 집회 자리를 찾아가다가 …극우 집회를 관통했다. …혼비백산해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 이걸 봐서 다행이라고 김보리는 몇번이나 말했다. 직접 보지 못했다면 다 노인들이라고 생각했을 거라면서. (2025.1.3. 금) 이날은 동생들이 나눠 준 ‘윤석열 탄핵봉’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나갔지만 꺼내지는 않았다. 그 이름이 내 손에서 앙증맞게 반짝이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 내 옆에 앉은 젊은 여성도 혼자 온 것 같았다. (…) 남태령 이후로도 이런 사건을 목격했다는 것은 이 나라 구성원으로서 내가 누리는 복일까. (2025.1.4. 토) 그랬다, 이 필자는. 계엄 사태가 발발한 2024년 12월3일 밤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간 뒤부터 광화문으로 갔고, 한남동 관저로 갔고, 경복궁으로 또 갔다. 집이 파주다. 애면글면 바라던 윤석열 탄핵안이 국회 통과되니 윤석열 체포를 막아선 자들이 나오고, 겨우 윤석열을 체포하니 윤석열을 석방시킨 자가 나오며, 그러거나 말거나 윤석열 탄핵 선고일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으니, 이 필자는 기어코 통곡을 한다. 올 3월20일 목요일이었다.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탄핵사건 선고기일을 발표한 날이다. “언제 또 그렇게 울어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 윤석열 탄핵 심판의 예고로 찰나 (뉴스를) 오독했다가 한덕수 이름을 확인”하고서 “이게 뭐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정말 윤석열의 매봉산 방백(매봉산은 관저를 사면에 둔 산)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라는, “이렇게 많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