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투자망은 스타트업/벤처기업/자영업체 ↔ 투자자 간의 자율진행장터
전략적투자자(SI) 및 재무적투자자(FI)가 투자자로서 함께 참여합니다.

팝업닫기

[내란 종식 이후 저널리즘] 지면엔 '양비론'

페이지 정보

작성자 coajfieo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5-05-14 22:26

본문

[내란 종식 이후 저널리즘] 지면엔 '양비론' [내란 종식 이후 저널리즘] 지면엔 '양비론', 유튜브에선 '계엄옹호'에 무게 "유튜브 알고리즘에 언론사 기조도 흔들릴 수 있어" 방송사 시청자위원회, 유튜브 콘텐츠도 '견제'해야[미디어오늘 박서연, 박재령, 금준경 기자] ▲ 아시아투데이 유튜브 '류여해의 적반하장' 갈무리. <탄핵은 기각! 각하! 시대의 영웅 전한길과 김성원이 말한다!!>. 지난 3월13일 아시아투데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아투TV의 '류여해의 적반하장' 코너 콘텐츠 제목이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최고위원 출신 류여해씨가 진행한다.지면이나 TV방송에선 직접적으로 계엄을 옹호하지 않은 언론사가 유튜브에선 음모론이나 과격한 주장을 할 수 있는 판을 적극 깔아줬다. 지면에서 계엄을 옹호한 언론사들의 행보는 유튜브에서 더욱 거침없었다.전한길 따옴표 넘어 마이크 쥐여 준 언론 유튜브TV방송과 지면에선 인터뷰가 많지 않았던 전한길 한국사 강사였지만 언론 유튜브 채널에선 경쟁적으로 섭외에 나섰다. TV조선, 조선일보, 채널A, 아시아투데이의 채널에 여러차례 출연했다. 그가 대구에 방문하자 지역신문들이 그를 만났고 뉴스통신사인 뉴스1과 뉴스핌도 그를 초청해 입장을 들었다.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본질을 흐리는 그의 발언을 인용하는 것을 넘어 마이크를 쥐여 준 것이다.지난 2월7일 영남일보 유튜브 인터뷰에서 전한길씨는 “계몽령이다. 오죽 답답하면 비상계엄 선포했겠나”라며 선거부정 음모론에 관해 “전산해킹 가능성이 있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지난 1월25일 매일신문 유튜브 인터뷰에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해명이 “면피용”이라며 “(검증 받았다는 건) 웃기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유튜브 '두시엔 김광일' 코너에 출연해서도 “(계엄은) 계몽”이라고 주장하며 “누가 내란범인지 국민이 알아버렸다”며 더불어민주당을 비난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옹호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를 인터뷰한 언론사의 유튜브 콘텐츠들. 클릭하면 확대된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매일신문 유튜브 채널에선 5·18 민주화운동 폭동설을 주장해 논란이 된 신남성연대 대표까지 인터뷰했다. 신남성연대 메신저 대화방에선 해당 인터뷰 영상을 공유하며 “드디어 언론다운 언론에서 사실을 보도해주고 있 1930년대 경성, 글로 새긴 ‘구보’씨의 외출 한달여간 소년중앙일보서 연재한 중편 作 의식 흐름·몽타주 기법 등 모더니즘 선구 고현학적 방법론 구현한 대표작으로 평가 박태원의 첫 작품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표지. 2025.5.12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박태원(1909~1986)은 1930년대 대표적 모더니즘 소설가로 꼽힌다. 그는 ‘몽보’(夢甫)나 ‘구보’(丘甫, 仇甫, 九甫) 등의 필명을 사용했는데, 구보의 한자명만 세 가지를 썼다. 박태원이 소설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 작품은 1934년 8월1일부터 9월19일까지 소년중앙일보에 연재한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인 소설가 구보(仇甫)가 집을 나서 청계천, 종로, 화신백화점, 조선은행, 경성역 등 서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귀가하는 하루 동안의 일들을 그렸다. 박태원은 자신의 필명을 주인공 이름으로 썼다. 소설 속 소설가 구보는 박태원 자신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박태원의 또 다른 장편 소설 ‘천변풍경’(1938년 출간)과 함께 1930년대 서울의 풍경을 생생하게 담았다는 점만으로도 문학사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통적 소설 기법 대신에 의식의 흐름이나 몽타주 기법 등을 실험했다. 식민지 문학인의 정신 구조를 직접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이 이상(1910~1937)이 1936년 발표한 ‘날개’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 모더니즘 소설로 꼽히는 이유다.박태원이 소년중앙일보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연재할 때는 이상이 ‘하융’이란 필명으로 삽화를 그렸다. 박태원은 이상, 이태준(1904~?), 김기림(1908~?), 김유정(1908~1937) 등과 함께 문학 동인 모임 ‘구인회’(1933~1936년) 회원으로 활동했다.표제작을 포함해 중·단편 소설 13편을 수록한 박태원의 첫 작품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1938년 12월 문장사에서 초판을 펴냈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이 책은 가로 12.5㎝, 세로 19㎝ 크기에 299쪽 분량이다. 소설가 구보를 상징하듯 원고지 모양으로 나눠진 12개 칸에 표제작 제목을 넣은 표지 디자인부터 모더니즘을 표현한다. 뒤표 [내란 종식 이후 저널리즘] 지면엔 '양비론'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