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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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ajfieo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10-26 12:51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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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새롭게 출범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폐지 수순을 밟으며 16개월간 장관 자리조차 공석이었던 부처가, 이재명 정부 들어 오히려 확대 개편되었다. 정부는 성평등정책실을 신설하고 고용노동부의 여성고용정책을 통합하며 "성평등 정책 컨트롤타워"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남성 역차별'을 연구하는 부서까지 만들었다.그러나 환영과 기대 속에서도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한 명칭 변경과 조직 확대가 과연 대한민국의 뿌리 깊은 성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지난 30년간 제도는 갖추어졌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던 이유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성평등가족부 역시 또 다른 실패의 역사를 반복할 위험이 크다.왜 여성가족부는 실패했는가: 선언만 있고 자원은 없었다한국의 성평등 지표는 처참하다.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29.3%), 유리천장 지수 최하위, 관리직 여성 비율은 고작 15.4%로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세계 최저 수준의 합계출산율(0.75명)은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다. 여성에게 육아와 가사를 전담시키고 남성에게는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누가 기꺼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겠는가.그동안 여성가족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양성평등기본법도 제정되었고, 육아휴직 제도도 도입되었다. 그럼에도 현실이 바뀌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돌봄의 공공화 실패다. 국가는 여성에게 '일터로 나오라'고 했지만, 그들의 자녀를 누가 돌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한국의 공공보육시설 비율은 15%로, 스웨덴의 85%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맞벌이 부부조차 아내가 남편보다 3.7배 더 많은 가사노동을 감당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둘째, 남성 참여 유도 실패다. 최근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31.6%로 상승한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는 동시에 '권장'과 '인센티브'에 기반한 정책의 명백한 한계를 드러낸다. 노르웨이가 '아버지 할당제'라는 의무적 제도를 통해 남성 육아휴직률을 4%에서 90%로 끌어올린 것과 비교하면, 우리의 접근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단순한 '권장'이 아닌, 강력한 '강제'와 '인센티브'가 어떻게 뿌리 깊은 문화를 바꿀 수 있는지를 노르웨이 사례는 명확히 보여준다.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자원 투입의 부재다. 한국의 가족정책 관련 예산은 GDP 영산강 유역 나주 고분군 처가가 있는 강진을 오가는 길, 나주시 반남면 들녘에 우뚝 솟은 고분들을 지날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저 거대한 봉분 아래 누가 잠들어 있을까. 한 사람의 무덤치고는 너무 크지 않은가. 막연한 호기심은 카메라를 들게 했고, 종종 영산강 지류를 따라가는 출사는 뭔가가 기다리는 듯했다.자미산을 중심으로 흩어진 신촌리, 덕산리, 복암리, 옥야리 고분들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듯하다. 약 1500년 전 마한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시간의 지층이다. 영산강 유역은 예로부터 사람 살기 좋은 곳이었다. 비옥한 평야와 바다가 만나는 이곳은 선사 시대부터 중국과 일본을 잇는 관문이었다. 그 지리적 이점 위에서 마한은 독자적 문화를 꽃피웠다. 비록 백제의 성장으로 고대 국가로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6세기 중반까지 이 땅의 주인으로 존재했던 54개국의 연합체인 것이다. 대형옹관 신촌리 고분군 #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고분군파인더를 통해 들여다본 신촌리 고분군은 장엄했다. 자미산 자락에 약 40여 기가 펼쳐진 이 무덤들의 가장 큰 특징은 대형 독널, 옹관이다. 박물관에서 본 옹관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영산강 유역 토착 세력의 자존심이었다. 9호분 앞에 섰을 때, 나는 한동안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이곳에서 출토된 금동관(국보 제295호)의 주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11기의 옹관 중 '을관'에서 쏟아져 나온 금동신발, 환두대도, 금반지, 유리구슬들. 5세기 중엽, 이 땅을 호령했던 지배자의 위세가 렌즈 너머로 느껴졌다. 덕산리 고분군 # 반남면덕산리 고분들 덕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미산에서 동남쪽으로 돌아 동북쪽 구릉에 자리한 14기의 고분. 그중 10호분은 독특했다. 대부분의 마한 무덤이 옹관묘인 것과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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